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 살고 있는 소시민으로서, 누구나 한 번씩은 생각해 봤을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나도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민주주의가 이미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민주주의"에 대한 말이 많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인지, 무슨 일만 터지면 민주주의가 어떻다는 말을 언급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게 정확히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확실한 정의를 내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학자들 중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은 천차만별이며, 분화된 세부적 하위 분야가 너무나 다양해 전체적인 명확한 정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단순히 국민이 주인인 정치체제라고만 한다면 오히려 더욱 분란만 넘쳐날 것임에 틀림없다.
보수도 국민이고, 진보도 국민이며, 그렇게 싫어하는 MB도 국민의 한 사람이고, 정치인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주인인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느니,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있다느니의 프로파간다는 언어유희를 넘어서지 못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분란은 이러한 민주주의 정의의 복잡성과 다양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간에 민주주의를 적용시키다 보니, 오해와 오용으로 서양 국가들이 몇 벽년에 걸쳐 일어났던 혼란들을 어쩌면 단기간에 다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론탄압이니, 생존권 보장이니, 지금 사회적으로 강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보는 민주주의의 진수는 타협이다. 다수결도 아니고, 국민만능주의도 아니며, 엘리트 주의도 아니다. 사회과학처럼 답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민주주의이며, 너무나 많은 사상과 이념이 섞여 공존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이다. 어느 것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민주주의인 것이다. 서로 상극인 진보와 보수도 서로 자신들이 민주주의이며, 자신들이 탄압받으며 서로가 민주주의가 탄압받았다고 외친다. 4700만 국민 모두가 한 개씩의 민주주의 정의를 가지고 있어 이러한 민주주의 간의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타협이라는 것은 최선을 찾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세상엔 최선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든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최선은 존재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타협이다. 그러므로 최선보다는 차선을 중요시한다. 타협이라는 것은 토론과 협상을 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너와 내가 모두 만족하는 2번째 대안을 선택한다는 뜻과 같다. 대립과 갈등에서 공동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나와 너가 모두 한 발 양보함으로써 서로 이익을 보는 시스템인 것이다. 서로간의 이익과 사상, 이념이 상충되기 때문에 나의 것을 취하기 위해서는 남의 것도 인정해야만 한다. 내 것만을 외친다면, 그것이 오히려 독재라고 불릴만한 것이 된다.
민주주의는 진리를 찾는 체제가 아니다. 완벽한 체제도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만능인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 자체가 차선책이다. 제도나 사상, 이념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나 자신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나의 자유를 보장받는 체제가 민주주의이다. 내가 원하는 10 에서 내가 3을 양보함으로써 7을 취하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10 을 원함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갈등을 차선책인 타협으로써 모두가 3을 양보해 나머지 7이라도 취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이다. 그러니 나의 양보 없이는 나의 이익을 취할 수 없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진리 그 자체로 통한다. 대의명분의 최우선 사항이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가 오롯이 하늘아래 우리 모두를 비추고 있어야 안심을 하는 편집증적 광신도들이 많다. 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어떤 것도 불사하는 그런 극단적인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수단일 뿐이다. 그것도 최선의 수단이 아닌, 차선책이다. 많은 오류와 약점이 있음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더 나은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양처럼 떠받드는 진리가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 하에서는 모두가 주인이므로, 정답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또한 더욱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는 타협의 방법과 그 환경을 만들어 줄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10 에서 3을 포기하면 7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타인의 이념과 사상이 절대적으로 틀렸고 자신의 주장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자신의 주장을 강제할 독재체제가 가장 어울릴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다른 이념과 사상도 융화시킨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국가주의, 시장주의, 자유주의, 평등주의 등 거의 모든 이념과 사상을 내포하고 이를 적절히 적용시킨다. 적용수단으로써 사용되는 것이 타협이요, 토론이다.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비슷한 체제를 가진 국가는 몇 되지 않는다. 똑같은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국내적 토론과 타협의 결과가 다 달라 나타나는 정치체도가 조금씩 다른 것이다.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거나 탄압받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를 뿐더러, 민주주의를 믿지도 않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만도 진리는 4700만 개가 존재한다(국민들의 수만큼). 그 중에서 어느 하나가 우월하다고 외치는 것은 독재를 원하는 것이라고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민주주의가 진리의 옳고그름을 가려주는 것도 아니다. 서로 내세우는 상반되는 진리의 타협을 도와 줄 뿐이다. 물론 행동은 사람들이 하겠지만.
이제 제발 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갈등만 더욱 증폭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내가 민주주의를 내세우면, 반대쪽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결국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싸우는 말도 않되는 꼴을 연출하게 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민주주의로 포장해 봐야 사회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프로파간다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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